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트라(Hatra, 1985): 셀레우코스 제국부터 파르티아 제국까지, 문명의 교차로

하트라(Hatra)는 고대 세계의 중요한 교차로에 위치한 도시로, 오늘날 이라크 북부의 모술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셀레우코스 제국 시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파르티아 제국의 중요한 요새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하트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시대와 제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으며 독특한 도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오늘날 하트라는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고고학적 유적지로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트라(Hatra)

하트라 기본 정보

✔ 국가 : 이라크(Iraq)

✔ 위치 : 니나와 시(Governorate of Ninawa)

✔ 좌표 : N35 35 17.016, E42 43 5.988

✔ 등재연도 : 1985년

✔ 등재기준

👀 기준 (ⅱ) : 아치형 천장이 있는 방의 완전성으로 유명한 하트라 성역의 거대한 이완(Iwan)과 성스러운 담 밖에 흩어져 있는 13개의 작은 사원들은 이슬람 시대까지 이 지역의 건축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 기준 (ⅲ) : 하트라는 기념물과 비문 덕분에 그리스와 파르티아, 로마,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은, 아시리아에서 바빌로니아에 이르는 전체 윤곽을 볼 수 있는 뛰어난 증거물이다.

👀 기준 (ⅳ) : 하트라는 크테시폰, 피루자바드, 진지를리 등 동쪽의 원형 요새 계획을 따라 만들어진 도시 가운데 대표적 유적이다. 전인미답의 환경에서 이중벽을 구축하는 등 완벽한 조건을 갖춘 하트라는 파르티아 제국과 사산 왕조, 고대 이슬람 문명을 아우르는 구조물의 대표적인 예로 평가된다.


하트라의 역사적 배경

하트라는 기원전 3세기 셀레우코스 제국 시기에 처음으로 중요한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그의 영토를 나누어 통치했던 디아도코이 중 하나인 셀레우코스 1세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이 제국은 그리스-마케도니아 문화와 서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융합시켜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하트라는 이러한 문화적 교류의 중심지 중 하나로,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며 성장한 도시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트라 항공 사진

하트라의 황금기는 파르티아 제국(기원전 247년 ~ 서기 224년) 시기에 찾아왔습니다. 파르티아는 이란 고원의 북동쪽에서 발흥한 제국으로, 로마 제국과 여러 차례 충돌하며 서아시아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트라는 파르티아 제국의 서쪽 방어선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 도시로, 특히 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했습니다. 도시의 성벽과 방어 시설은 파르티아의 건축 기술을 잘 보여주며, 당시의 군사적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트라는 파르티아 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한동안 번영을 누렸으나, 서기 240년경 사산 제국에 의해 정복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도시는 점차 잊혀졌고, 모래 속에 묻혀 오랜 세월 동안 유적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하트라의 건축과 도시 구조

하트라의 유적은 그 당시의 건축적 성취와 문화적 융합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이 도시는 강력한 방어 시설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성벽의 두께와 높이는 당시의 군사적 기술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트라의 성벽은 원형으로 도시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 둘레는 약 6km에 이릅니다. 성벽 안쪽에는 수많은 신전, 궁전, 주택, 그리고 공공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트라 건축 양식

하트라의 건축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대형 신전들입니다. 이 신전들은 주로 파르티아 양식과 헬레니즘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특히 태양신 샤마슈(Shamash)에게 바쳐진 대형 신전은 하트라의 건축적 중심지로, 그 규모와 장엄함은 이 도시가 종교적 중심지였음을 보여줍니다. 이 신전은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과 메소포타미아 건축의 특징이 결합된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며, 건축물의 벽에는 정교한 부조와 조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들 조각은 신화적 이야기와 더불어 하트라 주민들의 종교적 신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트라의 궁전과 주택 유적은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줍니다. 이들은 주로 돌과 진흙 벽돌로 지어졌으며, 일부 건축물은 여전히 그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트라의 건축물들은 파르티아 제국의 번영과 기술적 성취를 반영하며, 그 문화적 다양성을 잘 보여줍니다. 이 도시는 당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며 형성된 독특한 양식과 예술적 표현을 보여줍니다.


하트라의 종교와 문화

하트라는 그 역사적 위치 덕분에 다양한 종교와 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도시 내에 있는 여러 신전들은 이 지역이 다신교 사회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하트라는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신들과 더불어 그리스, 로마, 그리고 이란의 신들을 숭배했던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 이는 하트라가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국제적 도시였음을 나타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트라 종교적 예술작품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샤마슈 신전은 하트라의 종교적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샤마슈는 태양의 신으로, 정의와 진리를 상징하며, 하트라 주민들 사이에서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신전 외에도 도시 곳곳에는 다양한 신들에게 바쳐진 신전들이 있었으며, 이들 신전은 각각의 신앙 공동체에 의해 관리되었습니다. 하트라의 종교적 건축물들은 다양한 신화적 주제를 담고 있는 예술작품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는 당시의 신앙과 종교적 의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트라는 또한 그 위치 덕분에 국제적인 교역의 중심지로도 기능했습니다. 이 도시는 실크로드와 연결된 중요한 교역로에 위치해 있어, 동서양의 상품과 문화가 교류하는 장이었습니다. 하트라의 상인들은 로마 제국, 페르시아, 인도, 중국 등지와 무역을 했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하트라에 흡수되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융합은 하트라의 예술, 건축, 종교적 표현에 반영되어 있으며, 이 도시는 고대 세계의 글로벌 도시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트라의 발견과 현대적 중요성

하트라는 오랜 세월 동안 모래 속에 묻혀 있다가 19세기 말부터 서구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습니다. 특히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하트라는 서서히 그 위대한 역사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발굴된 유적들은 고대 파르티아 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하트라가 당시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하트라는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이 유적지가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하트라가 다양한 문화적 영향이 융합된 독특한 도시이며, 고대 세계의 중요한 방어 기지이자 종교적 중심지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트라

그러나 하트라는 현대의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큰 위협을 받았습니다. 2015년, 하트라는 이슬람국가(IS)의 공격을 받아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으며, 이는 세계 문화유산의 보호와 보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현재 하트라는 복원과 보호 작업이 진행 중이며, 국제 사회의 협력을 통해 그 유산을 후세에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트라에 대한 맺음말

하트라는 고대 세계의 중요한 문화적, 군사적 중심지로서, 셀레우코스 제국과 파르티아 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며 발전한 독특한 곳으로, 그 유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하트라의 역사와 유산은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과 융합의 상징이며, 그 보존과 보호는 전세계 모두의 책임입니다.

다음 이전